암환자들의 마지막 선택 대체의학의 허실

2009. 12. 19. 11:57민간,자연요법/암

암환자들의 마지막 선택 대체의학의 허실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해 하루하루 죽음으로 몰리고 있는 말기 암환자들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어보는 대체의료의 세계. 대체의학 치료를 받고 있는 암환자들을 만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니 '완치의 기적'도 있었으나, 허무한 실패도 있었다.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91 년 5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유영래씨(당시 민주당 이기택 대표 비서실 부실장)는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오랫동안 노환에 시달리다 병원을 찾은 노모 정예금씨 에게 위암선고가 내려졌던 것. 게다가 벌써 암이 간까지 전이돼 수술을 하더라도 2~3개월밖에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씨는 모친의 수술을 강행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때 그 병원 원무과에 근무하는 유씨의 후배가 차라리 고향집으로 모시고 내려가 편안히 여생을 마치게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때마침 한 내과의사도 “상태가 매우 악화돼 수술해도 어려울 것”이라고 솔직하게 귀띔해줬다.

결국 유씨는 가족회의를 가진 후 일단 어머니를 서울의 자기 집으로 퇴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유씨는 어머니를 이대로 돌아가시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손으로라도 어떻게든 병을 고쳐내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유씨는 이후 도서관에 틀어박혀 잡지와 서적을 뒤적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암을 이겨낸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책들을 뒤적이는 한편으로 암을 고친다는 ‘비제도권의 명의’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비제도권 치료자들이 제시한 방법을 종합해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뜸과 죽염, 채소 위주의 식이요법으로 결판을 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부른 자리에서 “병원에서는 수술해도 두세달 밖에 못 산다고 했다. 나는 어떻게든 어머니를 살리고야 말겠다. 그러니 옆에서 간섭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게 맡겨달라”고 통보했다.

유씨는 뜸 전문가를 찾아 뜸 뜨는 법과 위암을 치료하는 뜸 자리(경혈)를 배운 후 시술에 들어갔다. 한번에 5~6분 뜸을 뜨는데, 콩알만한 크기에서 시작해 반경 4cm 크기로 뜸자리를 넓혀갔다. 모친의 식사는 미음, 죽염, 녹즙이 전부였다. 8~9일 뜸을 뜨고 나니 고름과 진물이 나왔다. 그 자리에 토란으로 만든 고약을 발랐다. 고름과 진물이 나올 때 쯤 그의 어머니는 피를 토하고 하혈을 했다. 세숫대야의 3분의 2가 피로 채워졌다.

유씨는 ‘이제 돌아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친은 피를 토한 후 기력이 더 떨어졌던 것이다. 유씨는 뜸을 중단하고서 겨우 숨만 이어가고 있는 어머니를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머니가 서서히 기력을 회복해갔다. 그리고 뜸을 중단한 지 5일쯤 지났을 때 어머니는 “위가 쑤신다”고 했다. 유씨는 다시 뜸을 뜨기 시작했다. 4~5일이 지나자 피를 토하고 하혈을 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결국 유씨는 가족들에게 “어렵겠다”고 이야기하고 임종을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를 시골 고향집으로 모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금방 돌아가실 것 같던 어머니가 한 달을 넘기고, 두 달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4~5개월이 지나자 걷기 시작하더니 곧 활동을 하시더군요.”

이후 유씨의 어머니 정예금씨는 건강을 회복하여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뜸은 더 이상 뜨지 않고 대신에 녹즙과 죽염, 물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음식도 육류나 짜고 매운 음식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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